AD 64.7.19에 로마에 대화재 사건이 일어난다. 로마 전역에 영향을 줄만큼 큰 화재였다. 화재가 진압된 후 여기저기 널린 잿더미가 로마 시민들의 마음을 황폐하게 할 무렵 로마에는 한 악성 루머가 소리 없이 퍼져가고 있었다. 그것은 당시 로마 제국의 황제 네로가 술에 취해 시흥을 돋우고자 로마를 방화한 것이라는 소문이었다.
네로는 이 소문을 잠잠케 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희생양을 찾기 시작한다. 그 희생양으로 등장한 것이 그리스도인들이다. 곧이어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체포 명령이 내리고 여기저기서 피비린내 나는 처형이 이어진다. 살아남은 그리스도인들은 카타콤의 동굴로 숨어들기 시작했고 적지 않은 수의 그리스도인들은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로마를 떠나 해외 여러 지역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이에 베드로는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베드로전서 4:12-13)고 한다. 이런 시대의 어둠 속에서도 우리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부활하신 주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을 만난 사건은 희망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를 찾아오신 그 주님은 인생 최대의 절망인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 부활하신 주님을 내 인생의 주님으로 영접한 순간 우리는 새 생명을 선물로 받게 되고 그 결과로 우리는 새로운 소망 곧 살아있는 소망을 소유하게 된다.
영국의 목공소에서 일하던 가난한 청년이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 갑자기 그에게 인생의 소망과 의욕이 넘치게 되었다. 한 10년 열심히 일하고 난 후 그는 드디어 가구 제조업체를 경영하는 사장이 되었다. 이제 돈도 명예도 갖게 되었다.
어느 날 그가 자기 공장 뒤편에 있는 언덕에 올라 산책하다가 널찍한 바위를 발견하고 걸터앉아 아름다운 마을의 정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그는 가슴에 밀려오는 행복감을 느끼며 그가 이런 작은 행복을 누리는 것은 자기가 걸터앉은 바위가 자신을 편안히 받쳐주고 있기 때문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순간 그에게 자신의 인생을 떠받쳐 주는 바위와 같은 존재가 바로 예수님이신 것을 생각하게 된다. 자신의 행복의 근거가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고 부활하신 주님, 살아계셔서 자신을 인도하시는 예수님이심을 깨달은 것이다.
여러분, 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셨습니까? 그 주님이 우리를 만나 주시고 우리와 함께하신다면 우리는 흔들릴 수 없는 소망의 사람이 된 것이다. 이제 우리로 교회의 한 지체가 되어 이 땅을 살게 하신 이유가 이 희망을 이웃들과 나누기 위해서이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베드로전서 3:15)
--- 이동원 목사의 <우리가 사모하는 공동체> 3장 희망 공동체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