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고 소외된 자를 하나님 자신과 동일시하셨습니다. 마르크스는 종교를 체제 유지를 위한 지배계층이 만들어낸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보았고, 종교를 피지배계층을 억압하기위한 수단으로 보았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당시 종교.정치 지도자들의 잘못을 책망하셨다. 특히 강자의 편에 서서 약자를 억압하는 형태를 강력이 비판하셨다.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도 당시 종교.정치 지도자들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신 동안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과 항상 함께하셔서 많은 오해와 비난을 받기도 하셨지만 그럼에도 늘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과 항상 친구가 되셨고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에게도 그들을 섬기라고 명령하셨다. 이들을 대접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대접하는 행동이라고 가르치셨고 그들을 하나님 자신과 동일시 한 것이다. 만약 기독교가 강자의 편에서 약자를 억압하기 위한 수단이라면 예수님께서는 결코 이렇게 말씀하지도, 행동하지도 않으셨을 겁니다.
둘째, 성경은 가난하고 소외된 자를 돌보라고 가르칩니다.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명령 중 하나인 십계명에는 안식일 규정이라고 6일을 일하고 7일째 되는 날은 쉬어야한다. 그런데 성경은 본인과 가족뿐아니라 종들과 가축까지 쉬도록 명령한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실 당시에는 휴일의 개념이 없었을 뿐더러 종들을 생산수단의 일부로 여기는 시대였다. 만약 기도교가 지배계급을 위해 만들어낸 하나의 이데올로기라면 기독교는 이런 계명을 만들지도 가장 중요한 계명 중 하나로 지금까지 지켜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십계명 뿐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중에는 인간사이의 관계를 다루는 규정이 있는데 이 규정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지켜야한다고 성경은 말씀하신다. 이 중에 '면제년'이라는 규정은 빚진 사람이 6년이 지나고 7년이 되면, 빛을 탕감해주는 규정이다. 또한 빚으로 인해 종 된 사람도 6년을 일하고 7년째가 되면 자유인으로 풀어주독되어있다. 일반적인 경제논리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규정이지만 만약 기독교가 가진 자들을 위한 체제 유지의 수단이라면, 결코 이런 규정을 만들지않았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교회가 약자들을 억압하는 데 일조했던 경우가 있었지만 이것은 그들이 좋은 기독교인이 아님을 보여주는것이지, 기독교가 잘못된 것임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특히 교회의 이름으로 행해진 악행 대부분은 정치, 경제적인 목적때문이었지 종교적인 이유때문은 아니었다. 과학도 마찬가지로 사회진화론은 다윈의 진화론에 입각하여 사회의 변화와 모습을 해석하려는 견해로, 인종차별주의와 파시즘 , 나치즘을 옹호하는 근거로 사용되었다. 사회진화론은 잘못된 과학일 뿐이지, 과학 전체를 잘못된 것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훌륭한 이념과 신념이라도 악용될 가능성은 존재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종요나 과학, 신념이 잘못된 것이라고 부정해서는 안된다.
셋째, 교회는 예수님과 성경의 가르침에 따르고자 노력해왔습니다. 교회가 약자의 편에 서서 인류 역사에 선한 영향력을 끼쳤던 '노예제 폐지'라고 노예제는 오랜세월 동안 형태를 달리하며 인류 문화 전반에 보편적으로 퍼져 있던 제도였다. 노예제는 인간사회에서 사라질 것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된 이유를 종교사회학자인 로드니 스타크는 '웬만하면 부정하고 싶지만 로마제국이 망하자마자 기독교 신학에 노예제에 반대하는 교리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결국 기독교화된 유럽에서는 주변부만 남기고 노예가 사라지게 되었다. 또한 신세계의 노예제 폐지도 기독교인들의 손에서 시작되었고 또 성취되었다. '기독교인들이 노예제 폐지 운동에 나선것은 단수한 인권문제만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어긋났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노예제도 외에도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나라의 기독교인의 비율은 2%가 되지않았지만 3.1독립선언문에 서명한 민족대표 중 절반이 가까운 사람들이 기독교인이었다. 초기 선교사들과 기독교인들은 의료와 교육사업을 통해 약자와 가난한 자들을 섬기는데 애썼고 약소국의 편에 서서 약자들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제2차 세계대전당시 독일은 나치의 만행에 독일교회는 동조했지만 디트리히 본회퍼와 같은 종교 지도자들과 나치에 충성 서명을 거부한 기독교인들은 나치를 강력히 비판하며 정의의 편에 서고자 했다. 20세가 후반 동유럽의 교회는 공산주의의 폭력에 반기를 들었다. 폭력에 맞서기 위해 또 다른 폭력에 의지하지않고, 용서와 화해라는 십자가 정신으로 세상에 참된 평화와 변화를 가져오고자 했다. 기독교의 중심에는 예수님이 계신다.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셔서 가난한 자외 소외된 자들과 함께하셨고, 이들을 사랑하고 섬기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로 인해 많은 비난을 받으셨고, 끝내는 스스로 불의의 희생자가 되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과부나 고아와 나그네를 돌보라고, 그들을 사랑하고 섬기며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세상을 변화시켜나가라고 성경은 반복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교회역시 비록 불완전하지만 예수님과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고 스스로 잘못된 부분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그 결과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을 따라 사랑과 희생과 섬김으로 세상의 빛이 되고자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