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섬김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 첫번째 이유는 주께서 모범을 보여 주셨기 때문이다. 그는 섬김을 목적으로 이 땅에 오셨고, 그 섬김의 절정으로 자신의 목숨까지 십자가에서 내어 주셨다. 그리고 그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날 밤 다락방에서 손수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모범을 보이심으로 섬김의 교훈을 실천하셨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제자들의 주인과 스승으로서 제자들에게 발을 씻김 받으셔야 마땅한 그분이 오히려 제자들 앞에서 머리를 숙이시고 무릎을 꿇고 수건을 들고 제자들의 냄새나는 발을 씻으신 것이다. 그리고 너희도 서로 발을 씻으라고 말씀하셨다.
둘째, 세상과 다르게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 리더십은 지배하고 내리 누르는 리더십이다. 그래서 자신을 높이려는 리더십이었다. 그것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나아가는 리더십이다. 그러나 주님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오셨다.
예수님은 상대가 누구이든 자신을 칭하는 호칭이 하나였다. ‘인자’, 이 명칭은 계급에 따른 것이 아니라 그의 역할, 사명을 상징하는 호칭이었다. 그분에게는 자리가 중요하지 않으셨다. 역할과 사명이 중요하셨을 따름이다.
셋째, 고난 후에 영광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왜 우리가 섬기기를 싫어합니까? 섬김은 우리에게 고난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잠시의 고난을 견딜 수 있다면 성경은 섬기는 자들에게 영광을 약속한다. 우리가 섬김의 과정에서 경험하는 가장 큰 보편적인 실망이 있다면 섬김의 보상이 빨리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노력의 대가가 없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좌절하고 원망하고 포기한다. 그러나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예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즉 보상은 내가 임의로 주기보다 스스로의 섬김 결과에 따라 아버지가 알아서 주실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묵묵히 고난을 견디고 섬기라는 말이다. 그래서 영광의 자리를 보장하라는 말에 예수께서는 그들이 먼저 마실 잔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예수께서 먼저 마신 고난의 잔, 고난의 세례였던 것이다.
우리 주님도 먼저 섬기셨다. 고난을 기꺼이 감수하며 섬기셨다. 그 후에 그는 영광을 얻으셨다. 그러므로 하늘의 영광을 바라보는 자마다 먼저 섬겨야 한다. 고난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섬김은 땀 흘림이요 희생이요 헌신이다. 그래도 우리가 섬겨야 할 이유는 고난 후에 영광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 이동원 목사의 <우리가 사모하는 공동체> 9장 섬김 공동체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