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평화의 중보자로 쓰임을 받기 위해 할 일은 무엇인가?
평화의 복음을 전파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평화를 말하고 평화를 추구하면서도 왜 평화 하지 못한가? 그 성경적인 대답은 인간의 죄 문제 때문이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로 가신 이유, 그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유가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아니었습니까? 복음은 인간적인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었던 죄 문제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해결되어 우리가 새사람으로 살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복음이 소망인 것이다. 그래서 복음이 전해져야 진정한 평화가 오는 것이다.
1919년 3.1 만세 운동이 일어난 후인 4월 15일 오후 2시경 일본 육군 중위 아리타 도시오가 일단의 일본 군경을 이끌고 수원 향남면 제암리에 도착하여 주민들에게 알릴 소식이 있다고 주민들을 제암리 교회당에 모이게 했다. 대부분이 교인들이었던 약 30명의 주민이 모이자 그들은 교회당 출입문을 폐쇄하고 문을 잠근 다음 교회당에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질렀다. 그리고 창밖으로 기어 나오는 이들에게 집중 사격을 명했다.
한 부인이 어린아이를 창 밖으로 내놓고 이 아이만을 살려 달라고 소리치자 사격에 이어 어미와 아이를 함께 창으로 찔러 댔다. 절규 소리, 찬송 소리가 잦아들면서 교회당은 마침내 한 줌의 잿더미로 변했다. 이날 교회당안에서 죽은 사람들이 22명, 뜰에서 죽은 사람이 6명이었다. 이어서 제암리 마을 31호를 모두 불태워버렸다.
그러나 1970년 일본의 오야마 목사 일행의 속죄기금으로 이곳에 기념 교회당이 건립되어 봉헌되던 날 일본 그리스도인 대표들과 한국 그리스도인 유족 대표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앉아 함께 예배하고 함께 찬송하고 함께 기도하는 기적이 일어났고 예배의 절정에서 일본 대표의 사죄와 유족 대표의 뜨거운 눈물의 용서 고백이 있었다.
이날 교회당 안에서 선포되고 실천된 용서는 오직 복음 때문에만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러므로 할 수 있는 한 모든 방법을 다하여 우리는 평화의 복음을 평화로운 방법으로 전해야 한다.
평화의 성령으로 교통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도 평화의 교제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 안에 아직도 잔존하는 죄성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성령 안에서 교제하는 것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령의 공동체 내에서 가장 중요한 사역이 바로 성령의 교통하게 하시는 사역이다. 부부 교제시 행복의 비밀도 성령의 교통이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의사소통의 비밀도 성령의 교통이다. 우리 민족의 평화 통일의 비밀도 성령의 교통인 것이다. 교회는 평화의 중보자가 되어야 한다. 평화의 중보자로 기도하고 평화의 중보자로 전도의 책임을 다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 이동원 목사의 <우리가 사모하는 공동체> 15장 평화 공동체 중에서 |